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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기 풀무원 정신을 잇고 있는 ‘평화나무농장’을 찾아서
유기농업 최고봉 생명역동농업 실천 중
2023-03-15 조회수 : 2550

시민기자 최순자

 

“포천 어느 기관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진행자가 ‘평화나무농장 아시죠?’ 하면서, 아는 사람 손들어보라는데,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김준권이 유명하니까 포천 사람들도 다 아는 줄 알았다며 민망해하더군요.”

ⓒ시민기자 최순자

 

이 말에 100% 공감한다. 포천보다 전국에서 유명한 농장 주인장으로 잘 알려진 분들이 포천 관인에서 생명 살리기 정신으로 ‘평화나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종자산을 바라보고, 지장산 기슭에 터를 잡은 지 어언 22년이 된다. 풀무원 농장을 운영했던 고 원경선(전, 거창고 이사장) 원장과 지명희 여사의 사위와 딸인 김준권(포천교육문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원혜덕(전 소명여고 교사, 한겨레 삶의 창 연재 중) 대표로 스스로는 농부라 한다. 잘 알려진 풀무원은 원 대표의 오빠, 원혜영 전 국회의원이 창립한 회사이다. 풀무원 초기 효소 공장을 포천에 두기도 했다.

나도 그동안 바쁘다고 못했던 일, 좋아하는 산을 바라보면서 실컷 책 읽고 글 쓰며, 강연하며 살겠노라고 포천에 연구소 터를 잡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다. 포천에 오고 나서 분단 극복을 위해 평화운동을 하는 지인에게 평화나무농장 얘기를 들었다. 검색해서 살펴보니,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1월부터 기자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우선 이곳을 취재해서 공유하고 싶었다. 몇 차례 연락을 드렸으나 워낙 바쁘신 분들이라 일정 잡기가 어려웠다.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고 나서 뵐 수 있었다.

ⓒ시민기자 최순자

먼저 자동차로 5분 거리로 이사 온 이웃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지라 가족과 함께 갔다. 방문했던 날도 오셨던 손님들이 떠나고 난 후, 잠깐 사이에 가축을 돌보고, 새로 공사하는 곳을 살피느라 분주하셨다. 그런데도 자리를 잡고 두 시간 정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깊이 공명했다. 김 대표가 손수 구웠다는 이탈리아식 빵인 치아바타도 내놓으셨다.

김 대표는 반가운 말씀으로 입을 여신다. “포천의 교육·문화, 인문학을 위해 퇴임한 교수, 신부, 시민활동가를 포함하여 몇 명이 모여, 포천교육문화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나도 포천에 터를 잡은 후 ‘포천에 인문학 활성화가 필요하겠구나’라고 실감했다. 이를 인식한 분들이 모여, 2015년 1월부터 9년째 활동을 하고 있다니 기쁘고 반가웠다. 취재 승낙을 받은 후 농장 명칭의 의미부터 물었다.

“처음에는 ‘피스팜’이라고 했어요. 그러다 듣기도 부담이 없고 말하기도 편해야겠다 싶어 평화농장에다, 친근감 있게 자연을 상징하는 나무를 넣었고, 나무처럼 잘 자라라는 의미를 넣어 평화나무농장이 된 거예요. 평화에서 화(和)자를 보면 벼화(禾), 입구(口)죠. 먹는 거를 같이 나누는 게 평화거든요. 그게 사람과 세상을 편하게 하죠. 그래서 농사를 짓는 일이야말로 평화를 짓는 일이라 생각하고 농사를 짓고 있어요. 아이들 이름도 이화, 이평인데 끝 자를 합하면 화평(和平)이 되는 거죠. 화평도 평화를 상징하는 말이잖아요. 누구든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야 하고, 아이들도 자라서 이 세상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았어요.”

1955년 부천 소사에서 시작한 풀무원 농장이 1976년에 양주로 왔다. 그러다가 김 대표가 독립해서 포천으로 오게 된 것은 2008년이다. 가축도 있고 해서 먼 거리보다 양주에서 한 시간 거리를 고려해서 터를 잡았다. 풀무원 농장을 일군 원경선 선생도 2013년에 여기서 작고하셨다. “유기농업을 하기에 적절한 곳이었죠. 단 땅에 돌이 많고, 5천 5백 평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하신다.

ⓒ시민기자 최순자

어떻게 두 분이 결혼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김 대표는 “열여덟 살에 풀무원 농장 연수생으로 들어갔죠. 아내하고는 여덟 살 차이가 나요. 처음 갔을 때 마당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더군요. 이 사람은 제 선생님 딸이고 저는 연수생이었죠. 처가는 7남매인데 다들 쟁쟁하죠.”라고 했다. 신앙적 대화를 시작으로, 8년 뒤 원 대표가 열여덟이 되던 대학 1학년 때 사랑은 시작됐다. 졸저 <아이의 생각 읽기>를 드린 후, 건네받은 <아버지, 참 좋았다(원혜영 저)>를 3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앉은 채 완독했다. 거기에 장인은 사위 될 사람의 됨됨이, 성실함뿐만 아니라, 낙천적인 모습도 좋아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사람 좋아하고 유기농업 실천을 평생 업으로 작정 한 김 대표는 아내 될 사람에게 “나하고 결혼하려면 교사를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단다. 서로 사랑한 사이였던지라 원 대표는 교사를 그만두었고, 긴 연애 끝 1981년에 결혼했다며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김 대표가 어떻게 선생의 뜻을 이어 평생을 유기농업, 그것도 유기농업의 최고봉이라 하는 생명역동농업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잔잔한 호수(동행인 표현) 같으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치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경기지역 예비고사 여자 수석을 한 수재였던 아내가 좋아하기에 충분했다.

ⓒ원혜덕

“당시 열여덟 살 때에는 농사 외에는 다른 특별한 뭐가 보이지도 않고 해서 그걸 배우려고 갔죠. 사람은 살다 보면 우연히 뭐가 되는 일이 있잖아요. 큰 뜻을 세우고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걸 감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그러나 감당하게 되면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역사가 되는 거죠. 풀무원 농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장인이 일본 ‘애농회’ 회장 고다니 쥬니치 선생님을 초청해서 최초로 유기농업이 시작하는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접하게 됐고 그걸 하게 됐죠. 정농회(正農會) 창립(1976, 1. 사진) 회원 중 아직까지 유일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접니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일에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치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 혹은 사회를 위해 자기 삶을 헌신하는 거죠. 그런 사람을 우리는 위인이라고 그렇잖아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위인 중에 아무도 없잖아요. 저는 유기농업을 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삶을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바쳐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다니 쥬니치 선생님 말씀이 바로 그거였거든요. ‘네 삶을 가치 있는 일에 써라’. 제가 풀무원 농장에 있으면서 우리 사회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함석헌 선생을 비롯하여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그런 분들이 오셔서 말씀해 주셨죠. 그게 참 공부죠.”

ⓒ원혜덕

“생명역동농업은 1924년에 루돌프 슈타이너가 독일의 한 농장에서 한 강연이 토대가 되어 전 세계에 전파된 농법입니다. 한마디로 생명력 쇠퇴를 막는 농법입니다. 지금은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잖아요. 지속 가능성이 없어요. 그 농사 방법으로 계속하다 보면 땅이 황폐해지고 사막화됩니다. 생산량도 급감해요. 생명역동농업은 사람과 토양과 환경의 지속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생산 방식이죠. 우주적인 요소와 에너지를 토양에 전달하고, 토양에 전달된 그 활력이 작물로 오고, 그 작물의 최종 이용자는 사람이니까, 그 활력이 사람한테 와서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농법이죠.”

ⓒ원혜덕

생명역동농업으로 농사지은 평화나무농장에서 나오는 먹거리는 토마토와 벼를 비롯하여 마늘, 양파, 보리, 귀리, 수수, 콩 등 곡식 8가지에 채소는 수십 가지란다. 소 30여 마리, 젖 짜는 염소 20여 마리, 닭 몇십 마리를 기르고 있다. 가축을 기르는 것도 뜻이 있다.

ⓒ원혜덕

“소를 기르는 것은 이익을 얻고자 한다기보다, 그거 못지않게 중요한 게 퇴비를 얻는 거예요. 유기농업이라고 하는 거는 ‘유기물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이잖아요. 그걸 다시 땅으로 되돌려주는 거죠. 결국 이 지구의 재생과 순환이라고 하는 리듬에 순응해서 그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거죠. 순환이라고 하는 거는 흙에서 난 것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걸 말하죠.”

ⓒ원혜덕

앞으로 계획을 여쭸다. 원 대표는 “저희가 지금 어떤 거를 계획할 나이도 아니고, 유기농업 중에서 생명역동농업이라는 최상급으로 하고 있으니까 이걸 잘 이어가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큰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한다. 한국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했던 정농회 회장을 역임하고, 생명역동농업실천연구회를 꾸려오고 있는 김 대표도 같은 생각일 터다. 전국에서 평화나무농장 먹거리 주문이 들어온다니 다행이다. 재생과 순환의 가치를 품고 있고 생명 살리기 정신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나무농장]

- 주소: 포천시 관인면 창동로 1071번길 57
- 전화: 010-4308-1877
- 회원제 안내: 블로그 https://blog.naver.com/whd0123123/22298141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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