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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관인에서 올린 전통혼례식과 사주단자, 혼서지
2023-08-08 조회수 : 1201

시민기자 최순자

 

결혼이 선택이고, 부부의 연으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쉽게 헤어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55년 전 1968년 사주단자와 혼서지를 통해 결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사주단자는 알고 있듯이 결혼을 정하고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신랑 될 사람의 사주, 즉 태어난 연도, 월, 일, 시를 적어서 보내는 것이다. 사성, 주단이라고도 한다. 사주단자를 가지고 가는 사람은 금실이 좋다는 기러기를 안고 갔다.

혼서지는 혼인서약서라 할 수 있다. 신랑의 본관, 아버지 직함, 출생순위, 결혼 날짜 등을 쓴다. 지역에 따라 다르나 함 속에 예물도 같이 보낸다. 예물은 치마저고리 옷감, 패물, 화장품 등이다. 혼서지를 받은 신부는 장롱에 혼서지를 보관한다. 세상을 떠나면 관속에 넣어 주었다.

ⓒ시민기자 최순자

최근 마을 어르신(노인순·76)을 만나 얘기하다가 1960년대 사주단자와 혼서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문점에서 제작한 사주단자와 혼서지는 봤지만, 직접 신랑 측에서 작성한 사주단자와 혼서지는 처음이다.

노인순 어르신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걸음이 빨라지고, 거기에 음성이 있다.’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추운 겨울에 관인 중리로 이사 왔다. 지금은 새로 조성된 관인 신교동마을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어르신은 결혼 사연을 전해 준다. “같은 동네 늘거리에 살던 친구와 가깝게 지내면 서로 집을 오갔다. 친구 부모는 냉면집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 복무하던 군인들이 자주 그 가게에 왔다. 그 군인 중 한 명이 중사 나제오 씨였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다가 결혼했다. 나는 스물둘, 남편은 스물넷이었다.”

사주단자와 혼서지를 받은 상황도 들려준다. “혼례를 앞두고, 시아버지가 직접 쓴 사주단자와 혼서지를 받았다. 시아버지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지관이었던 나천진이다. 남편도 시아버지에게 일찍이 천자문을 익힌지라, 시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직접 써라.” 했는데, 쓰지 않아 시아버지가 썼다고 한다. 함 속에서는 치마저고리 비단 옷감, 패물, 화장품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시민기자 최순자

이어서 결혼식, 남편 병간호 얘기도 꺼내신다. “사주단자와 혼서지를 받고, 1968년 10월 27일에 관인 중리 친정 마당에서 전통 혼례식을 올렸다. 날짜도 잊지 않는다. 결혼 후 2남 2녀를 낳아 길렀다. 남편이 입원한 적이 있다. 수술과 치료를 위해 약 석 달 동안 병간호를 했다. 그때 한 번도 자리에 눕지 않고 앉아서 잤다. 남편은 5년 전 추운 겨울 아침에 달이 떠 있을 세상으로 갔다.”

노 씨는 아직도 결혼 전 신랑집에서 보내온 사주단자와 혼서지를 갖고 있다. “가는 사람은 가고 싶어서 가드냐? 갈 때가 되면 가야 되야 보다.” 팔순을 앞둔 어르신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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