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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를 기억하며 살자
2014-09-17 조회수 : 5828

이학섭(이동면)

“처음엔 얼마나 떨렸는지 아냐? 그런데 두세 번 하니까 슬슬 익숙해지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벌써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며 경험담을 펼치기 시작했다. 주례사는 학식 있고 경험 많으며, 나이 지긋하신 50대 후반 이상 어르신들만 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요즘 ‘40대 주례’도 주위에 꽤 많다. 연령파괴가 주례까지 파급될 줄이야…….
물론 내 친구도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 포천에서 태어나 평생 포천에 살면서 학교에서 후학을 키우는 선생님이고,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던데다 지금도 참 바르게 인생을 살고 있으니 주례 자격이 충분하다.
친구의 경험담은 계속됐다.

“제자한테서 처음 주례 부탁을 받았을 때 아직 내 나이가 다른 사람의 주례를 설만큼 익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괜히 약속을 했나 싶었다니깐. 혹 주례를 보다 실수를 하여 남의 귀한 예식을 망치지나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친구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으므로 그 동안 잘 준비하면 되겠지 하고 이왕이면 신혼부부에게 깊은 인상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주례사 작성에 정성을 쏟았다고 했다.
친구는 저명한 교육학자의 원서 한권을 읽고 가족의 소중함을 담은 명문장을 옮기고, 자신의 체험담을 담는 등 심혈을 기울여 나름대로 평생 간직할 만한 주례사를 완성했단다. 드디어 결혼식 날, 식이 끝난 뒤 주례사를 흰 봉투에 담아 신혼부부에게 건넸다고.
친구의 주례사 요지는 이랬다.


“여보(如寶)는 같을 如(여)자와 보배 보(寶)이며,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라는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하는 말이며 여자가 남자를 보고 부를 때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當身)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마땅할 당(當)자와 몸 신(身)자.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내 몸과 같다는 의미가 '당신'이란 말이니 부부는 평생 동안 그 소중한 의미를 새기면서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여보’와 ‘당신’이란 말을 쓰세요.”

예식장에서 정신없이 한 번 듣고 흘려버리는게 주례사인데, 친구는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열어보고 소중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라는 말과 함께 이걸 건네줬다니 진정 자격 있고 속 깊은 주례선생님이다.
생각해 보니 오래전 나의 주례 선생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해주셨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혹시 그 속에 인생의 보물이 들어있었다면 그걸 기억 못하는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닌지.
이혼과 가정 파탄이 잦은 요즘, 신혼부부는 물론 하객도 가끔씩은 주례선생님의 깊은 말씀만은 귀담아 들어보고 평생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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